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브라운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>||[[파일:curry_tragic_prelude.jpg|width=100%]]|| >존 스튜어트 커리의 '''<비극적 서곡>'''(Tragic Prelude, 1942) 존 브라운(중간의 인물)의 봉기를 기념한 대표적인 벽화이다. [[캔자스]] 터피커에 위치한 캔자스 주의회사당에 있다. >'''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위대한 백인.''' >---- >― [[해리엇 터브먼]][[https://en.m.wikipedia.org/wiki/John_Brown_(abolitionist)|#]] >'''자유라는 대의를 위한 그의 열정은 나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났다. 내 신념이 작은 촛불이었다면, 그의 신념은 타오르는 태양 같았다. 내 열정은 신념에 묶였지만, 그의 열정은 고요한 영원의 해안까지 뻗어 나갔다. 난 노예를 대변해 말할 수 있었다. 존 브라운은 노예를 위해 싸울 수 있었다. 나는 노예를 위해 살 수 있었다. 존 브라운은 노예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.''' >---- >― [[프레드릭 더글러스]][[http://openmedia.yale.edu/projects/iphone/departments/hist/hist119/transcript10.html|#]] >([[흑인민권운동]]에 같이 참여할 만한 백인은 있는가라는 질문에) "없다. '''혹시 존 브라운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몰라도.'''" >---- >― [[말콤 X]] 브라운이 죽은 뒤 북부에서는 브라운을 찬양하는 여론이 형성된 데 반해 [[미국 남부]]에서는 마귀 수준의 살인마로 욕을 먹었으며, 북부의 존 브라운 옹호론에 충격을 받아 남부 분리독립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. 1년 4개월 후 [[남북전쟁]]이 발발하고 브라운은 노예해방의 상징으로 추앙받아 북군의 우상이 되었다. 그리하여 존 브라운의 죽음을 기리는 군가가 만들어졌으니 그 유명한 "[[http://www.youtube.com/watch?v=bSSn3NddwFQ|John Brown's Body]]"다. [[남북전쟁]]이 북부의 승리로 끝나자 브라운에 대한 [[재평가]]가 이뤄졌고 "John Brown's Body"는 국가행사에서도 불리는 노래가 되었다. 여기에 다른 가사를 붙인 곡이 "[[공화국 전투찬가|Battle Hymn of the Republic]]"이고 이것을 한국어로 번안하여 찬송가에 편입한 곡이 누구나 잘 아는 "영광 영광 할렐루야"라는 후렴구가 붙은 찬송가인 '''[[마귀들과 싸울지라]]'''(새찬송가 기준 348장, 통합찬송가 기준 388장)다. 존 브라운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이다. 노예 해방이라는 목적은 분명 숭고한 것이지만 굉장히 과격했으며 [[테러리스트]] 활동을 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.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본인의 깊은 기독교 신앙과 타락한 세상에 대한 절망, 핍박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한 인물 속에 결합해 있었던 의로운 분노(righteous wrath)를 목숨으로 보여준 인물이란 평가를 받는다. [[헨리 데이비드 소로]] 등 옹호자들은 노예 해방이라는 옳은 대의를 위해 투신한 이상주의자로 보고 비판자들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[[테러리스트]]로 규정하기도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